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나무의 삶


나무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밖에 나가 가로수길에 박혀 있는 나무를 보았다. 한 평 남짓의 땅에 뿌리를 박은 나무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주변 자동차들이 뿜는 퀘퀘한 매연을 맡아가면서도 꿋꿋이 살아간다. 그런 나무들도 어린 시절에는 묘묙이었고 적당히 큰 청년나무가 되었을때 이곳으로 옮겨 심어졌을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옮겨심지 않는한 이 나무는 항상 그 자리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그 자리에서 주변 환경에 순응한 채 평생을 살아간다. 그렇게 인내심을 기른 나무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좋은 그늘막이 되어주고 새들의 쉼터가 되어주기도 하며 조경적으로도 거리를 예쁘게 만들어준다. 한편으로는 평생을 그 자리에서 살아가야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인내력이 참 깊은 종이다.


나무들은 자신의 초록색 잎을 통해 광합성을 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가을이 되면 이 초록색 잎이 노랑색, 빨강색으로 물들곤 한다. 사람들은 그 색깔을 보며 '예쁘다'고 느끼지만 정작 나무들은 월동준비를 위해 자신의 잎을 빨갛게 물들여서 낙엽이라는 형태로 날려버리는 것이다. 산 정상에 올라가 저 멀리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면 단풍색이 형형색색이다. 나무들도 우리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지만 다 개인적인 특성이 있는것이다. 다만 동물과 다른 점은 두 다리가 달려 있지 않아 반드시 주변의 환경에 순응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가시가 무성한 주엽나무


나무를 좀 안다는 사람들은 주엽나무 하면 줄기 전체를 덮고 있는 가시부터 떠올린다. 원래부터 모양새가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무성한 가시들은 사람들이나 초식동물로부터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생겨 난 것이다. 날카로운 가시들이 가지를 치듯 사방을 뻗어 있는데, 이는 끊임없이 닥치는 외부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마련한 일종의 자구책이다.                                                            -55page-


내가 나무에게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편견은 "나무라는 생명체는 수동적인 존재라 자극에 그리  크게     반응하지 않을 것"이었다. 위 사진의 중국주엽나무는 보기만해도 큰 가시들이 징그럽게 돋아 있다. 그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 가시를 만들었다. 주엽나무는 인적이 드문곳에서는 가시가 돋지 않지만 사람이나 동물들이 주변을 지나다니기만해도 가시가 이렇게나 돋아버린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환경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나무가 아무리 겉으로 괜찮아보여도 껍질을 파내고 쑤시면 그들도 고통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 아무리 겉으로 속 좋아보이는 사람이라고 편하게 막대하면 안 된다. 겉으로는 표현 안해도 속이 많이 아파 가시가 돋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반응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사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상처 주고 상처 받는 사람들은 우리와 먼 관계가 아닌 더 가까운 사람들이 아닐까.


중국 '곽탁타'의 나무 키우는 방법

나무를 오래 살게 하거나 열매를 많이 맺게할 능력은 없습니다. 다만 아는 건 나무의 본성이 잘 발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릇 나무의 본성이란 뿌리는 넓게 펼쳐지길 원하고 흙은 평평하기를 원합니다. 일단 그렇게 심고난 뒤에는 건드리지 말고, 걱정하지도 말며, 다시 돌아보지 않아야 합니다. 그 뒤는 버린 듯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이를 키울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단연코 독립심과 책임감을 기르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를 망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아이가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을 제한하지 않고 전부 해주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당장 어린 나이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독립을 해야만 할 나이가 왔을때 '스스로 먹이를 사냥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는 눈덩이처럼 더 커진 시련을 스스로 감당해야만 한다. 그들은 결국 자신에게 닥친 환경을 감당하지 못하고 해외 도피 유학을 하거나 자신의 진짜 문제를 외면하기 바쁘다.


나무를 기를 때 자생력을 키워주는 것에 집중해야한다. 뿌리가 넓게 펼쳐지면 자신이 필요한 양분을 필요한만큼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것이다. 흙이 평평하면 그만큼 비바람과 같은 시련이 몰아닥쳐도 비온뒤 땅을 굳게 만들수 있다. 결국 인생에 주어진 책임을 지게 하기 위해 부모가 해야할 일은 자식이 스스로 겪어야할 시련과 고난을 감당할 수 있게 보살펴주는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부모는 가끔씩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수 있지만 사소한 것까지 참견하고 간섭하면 아이를 반드시 망치게 된다. 아이들의 나무 뿌리가 넓고도 깊게 박혀 수용성 있는 삶의 태도를 갖추되 가끔 잘못된 선택을 통해 세상을 배우게 될지라도 스스로 책임을 가진다면 더 없이 건강한 나무가 될 수 있을것이다.


걸음을 늦추고 제대로 느끼려고만 들면 나무 한 그루에서 백 개도 넘는 이야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밥을 천천히 씹어서 음미하는 것처럼 산도 천천히 씹어서 그 맛을 느껴 보세요.


등산을 할 때 꼭 정상을 가야할 필요가 있을까. 등산을 가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근처 관악산이나 북한산, 청계산을 올라 보면 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막걸리 한 잔 하는 등산객들이 자주 보인다.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산 높은 곳에 올라가 먹자판을 벌리는 모습이 즐거워 보인다. 어떤 사람은 저 멀리 보이는 경치를 바라보기도 하고 가볍게 뛰어가는 등산을 즐기는 사람도 보인다. 평소 등산과 거리가 멀지만 모처럼 정상 인증샷을 찍으러 온 사람도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이라 등산도 인스턴트식 인증이 많아졌다. 등산을 몇시간만에 하루에 1개도 아니라 2개를 도는 사람도 있다. 지겨운 발걸음에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라디오나 음악을 틀면서 등산하기도 한다. 심하면 블루투스 스피커를 틀기도 하다. 많이 적적한가보다. 그 수많은 식물들을 바라보면서 걷는데도 어느것 하나 제대로 살펴본적은 없다. 등산이라도 맘편히 쉼의 여유를 가지고 올라갔으면 했다. 인생은 어차피 물리적으로 흐르는 크로노스적 시간을 따라 간다.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관찰력 있는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 명상을 하듯 숨쉬듯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떨어진 낙엽 하나, 잎파리가 붙어 있는 나무들이 살아 숨쉬는 세계를 온전히 느끼고 오기를. 그 게으른 산행은 정상에 오른 성취감 만큼 우주적 만족감을 줄 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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