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혹은 모두가 너를 미워할때
- COLUMN
- 2022. 3. 17. 19:16
사람은 누구나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사랑받고 싶은 욕구, 인정받고 싶은 욕구, 행운이 찾아오기를 기대하는 마음들.
이것들은 잘못된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가지게 되는 당연한것들이다.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잘 알것이다.
사람을 맞추는게 쉽지 않고 설사 맞추게 되더라도 내 기분은 챙기지 못하기도 하고
이랬다가 저랬다가 감정이 흔들리는 마음을 겪고 나면 밖에서는 활기찬 마음도 집에 오면 울적해지기 마련이다.
미움 받을 용기라는것은 특별한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스스로 나답게 살아가라는 의미이다.
어차피 당신이 착한 사람이 되고자 하여도 누군가 싫어하는 사람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면 착한 아이 콤플렉스로 사람들을 맞춰주고서 욕을 먹을 바에는 그냥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아간 후 남들의 미움을 받는게 낫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법, 규범, 집단 사회생활의 규칙, 상식에 벗어난 행동을 적극권장하는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선은 있고 그 선을 넘는 순간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기고 그것을 다시 긍정적인 이미지로 바꾸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미움을 받는 이유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이 드는가.
자신에게 있는것이 맞긴하다.
스스로에 대해 확신이 없고 자신이 없으면 착한 사람일지라도 남들에게 휘둘리기 쉽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살기 힘든곳인가보다.
당신은 그저 당신의 삶을 살아가고 싶었을뿐인데 집단지성으로 모두가 당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힘들긴 할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지내는 시간, 혼자 사색하는 시간을 그러한 감정에 휩싸여서 시간낭비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당신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어도 응원할것이다.
때로는 말은 청산유수이지만 행동에서 거짓이 드러나는 사람이 있다.
물론 말이라도 좋게 해야 가산점을 받을수 있겠으나 너무 이상주의자들은 말만 있을뿐 실천이 없다.
그러한 사람은 도통 신뢰가 쌓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처세술에 완벽하지만 그 가식적인 모습이 한순간에 드러나서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기도한다.
그러한 실수는 봐줄만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 가식적인 모습을 드러낸것이 아닌가.
또 어떤 사람은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가식적인 모습이 싫다고 한다.
솔직하게 사는것이 최고라고, 그 솔직한 사람마저 어디까지 솔직해야할지 고민하는것이 사회다.
당당해 보이고 유머러스하고 항상 일을 잘할것 같은 사람들도 행동거지를 조금만 분석해보면 그늘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정말 밝아 보이는 사람도 어두운 면이 있는 반면, 어둡고 음울한 사람들도 행복의 기준이 다 있기 마련이다.
이 사회는 그러한것들을 하나 하나 인정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
다만, 당신이 싸워나가야할 숙제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한국 사회가 힘든것은 동메달을 따와도 금메달을 요구하는 사회이기 때문이지 않는가.
어떠한 메달을 따오든 설사 메달을 따오지 않더라도 당신이 스스로에게 떳떳하면 그걸로 된거다.
스스로를 비하하는 시간보다는 차라리 당신을 미워하는 그 사람들을 욕해라.
그리고, 스스로를 다독여주는 시간을 갖자.
어떠한 사람은 직장에서조차도 만나는 사람마다 미움받고 가족들에게도 미움을 받는 사람이 있다.
정말 미움받을만한 행동을 한것인지 당신이 만만하게 보여서 그들이 욕을 하는것인지 객관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의외로 사람은 군중심리에 약해서 아닌것을 진실로 믿는 경향이 있다.
다수가 옳다고 하면 소수의 의견은 무시된채 그 소수에게 오해만 쌓여가는것이다.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다수의 의견을 무시할수는 없지만 그것이 잘못된것이라면 오해를 풀어야할것이다.
그것을 적극 해명하는것도 사실 귀하지도 않고 하찮은것이긴하다만 스스로가 힘들다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피고 싶지 않은 감정일지라도 반드시 살펴줘야할 필요가 있다.
항상 좋은것만 느끼고 행복감을 느끼고 싶어도 행복은 그렇게 지속되는것이 아니다.
순간 순간 찾아오는것이 행복이다. 지속감을 느끼고 싶어도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미움받을 용기를 갖춰야할까.
정말 미운털이 박히도록 자유롭게 살아가는것이 옳은가?
아니면 남들 비위를 맞춰가면서 자신이 썩어들어가는것이 옳은가?
정답은 없다. 다만 당신이 선택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아마 반반의 태도를 지키고 있지 않는가 싶다.
너무 자유로우면 그것이 나쁜것은 아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피해의식이 생길것이고 열등감이 생길것이다.
그러면, 그러한 사람은 당신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괜히 괴롭히고 싶어질것이다.
그것을 알아챈다면 이 사람이 당신을 왜 싫어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할수가 있다.
그러니, 자유를 선택하든 규칙을 선택하든 좋은것을 선택하면 되오나 그 이유를 정확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
진심으로 누군가가 당신을 싫어한다면 그 이유는 대체로 투사에서 비롯된것이 많다.
그러니까 당신의 어떤 미운점이 자기 자신에게서도 보이고 그것이 너무 나를 불편하게 하니까 상대방의 감정을 무시하는것이다.
그러한 과정이 반복되다보면 당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말하는 사람이나 결코 좋은 관계는 될 수 없다.
결과적으로는 당신의 기분을 이야기 하는것이 좋다.
완곡하게 말해도 좋고 당신의 기분을 객관적으로 전달해도 좋다.
어쩌면 한번 싸우게 될수도 있지만 그것 자체로도 감정이 분출되는것이므로 좋다.
괜히,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방 기분을 맞추려다가 스스로 공황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황이 오면 당신은 감정의 하강나선 롤러코스터에 빠져든것이다.
당신이 하고자 하는 모든일이 잘 안되기 시작할것이고 스스로가 정말 잘못된것이라고 믿게 될것이다.
하지만, 그건 틀렸다. 당신이 그 일에 최선을 다했고 스스로 떳떳하다고 느낀다면 그 결과가 어떻든 당신의 것이다.
열심히 했다는 말이다.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을수도 있지만 스스로를 비하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욕해라.
반면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이 잘하지도 않았으면서 남들을 욕하고 다닌다.
그런 사람 평판은 말하지 않아도 알것이다. 사람이 많아보이지만 사람이 없다.
진정성을 갖춘다는것은 당신의 노력여하에 따라있다.
당신의 감정에 솔직해질뿐만 아니라 표현하는 연습을 갖추자.
누군가가 당신이 싫다고 한다면 애써 사랑받고자 노력하지는 말아라.
싫다고 해서 그 사람을 싫어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상처 받지 말고 자신의 일에 더 집중하는 시간을 갖춰라.
결국, 이 세계는 자본주의의 법칙이기 때문에 당신이 성공한다면 그 성공의 냄새를 쫒아서 알아서 사람들이 복종하게 될것이다.
그러한 매력적인 모습은 당신이 흔들리지 않는 굳걷한 모습을 통해 이루어질수 있는것이다.
여기서 그 결론이 났다. 결과적으로 당신이 힘든것은 당신 때문인데, 그 이유는 당신이 떳떳하지 못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두가 당신을 미워한다고 해도 기둥을 제대로 세우는 연습을 해라.
오히려, 당신 일에 집중하고 열심히 해내서 스스로에게 증명을 하는 연습을 하자.
그들의 높고 높은 기대치는 맞추자하고자하면 끝이 없다.
스스로가 성취할수 있는 작은 성취부터 해내면서 스스로를 칭찬해내면서 오늘도 잘살았다고 칭찬해주면 그만이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연습을 잘해내길 바란다.
모든 사람이 당신을 미워해도 나는 당신을 응원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