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거리> 박노해

해거리

박노해

 

그해 가을이 다습게 익어 가도

우리 집 감나무는 허전했다.

 

이웃집엔 발갛게 익은 감들이

가지가 휘어질 듯 탐스러운데

 

학교에서 돌아온 허기진 나는

밭일하는 어머님을 찾아가 징징거렸다.

왜 우리 감나무만 감이 안 열린당가

응 해거리하는 중이란다.

감나무도 산 목숨이어서

작년에 뿌리가 너무 힘을 많이 써부러서

 

올해는 꽃도 열매도 피우지 않고

시방 뿌리 힘을 키우는 중이란다.

해거리할 땐 위를 쳐다보지 말고

밭 아래를 지켜봐야 하는 법이란다.

 

그해 가을이 다 가도록 나는

위를 쳐다보며 더는 징징대지 않았다.

땅속의 뿌리가 들으라고 나무 밑에 엎드려서

나무야 심내라 나무야 심내라.

땅심아 들어라 땅심아 들어라.

배고픈 만큼 소리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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